작품 소개
- 제목 : 죽어야 번다
- 작가 : 안현일
- 장르 : 판타지
꿈을 향해,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선택했다.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꿈은 깨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조차 없을 때 누군가 만 골드의 계약을 제안했다. 죽음을 향한 첫걸음. 그것은 희생이었으며, 일탈이었고, 또 새로운 모험으로의 시작이었다.
줄거리
당신의 죽음으로 100억 원을 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의 가족, 친지, 친구 등등 당신이 원하는 누군가에게 100억 원을 남길 수 있다면 말입니다.
더 제한을 두자면, 현재 당신은 빈털터리이고, 미래에 대한 어떠한 가능성도 닫힌 상태며,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여기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이야기입니다.
미드랜드 대륙력, 5234년 2월 34일 동이 트는 어느 아침. 엔서크 왕국의 수도.
도박으로 돈을 잃은 주인공 길버트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일주일이나 서류를 작성해 준 대가로 받은 10 실버를 하루아침에 도박으로 탕진을 한 길버트.
봄이지만 추운 날씨와, 졸린 몸을 이끌고 눈치 보이는 집에 가려고 하는 길버트 앞에 실크해트를 쓴 노신사가 나타난다.
노신사는 뜬금없이 길버트에게 "자네, 돈 한번 벌어보고 싶지 않나?"라는 말을 하였고, 그것을 듣고 의아해하던 길버트에게 한 가지 일만 해 준다면, 만 골드를 주겠다고 한다.
한 가지의 일. 죽음.
그것을 들은 길버트는 화가 치솟았지만, 귀족 같이 보이는 노신사에게 욕을 하지는 못했다. 귀족을 건드렸다간 큰 해를 입을 수도 있었기에. 하지만 길버트의 성격상 무시당할 자존심이 아니었기에, 자신은 한 때 수도에서 잘 나가던 기사였고, 훈작에 봉해진 적 있는 인물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입을 그만 놀리라고 경고를 했다.
그러한 길버트에게 작은 종이 쪼가리 한 장을 주며, 생각이 바뀌면 연락을 하라고 하였고 길버트는 이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노신사는 길버트의 손에 종이를 쥐어주며 연락하고 싶으면 종이를 찢으면 된다는 소리를 하고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게 된 길버트. 집 안에는 식사 중이던 딸과 아들이 있었다.
원망이 담긴 말을 하며, 집을 나가는 아들 에이스 로딘. 길버트가 무슨 말버릇이냐며 버럭 외쳐보지만, 이미 나간 후였다.
안절부절못하는 듯, 담담한 시선의 짓던, 딸 엠마 하트는 길버트에게 식사를 했냐 물었고, 달라고 하는 길버트. 그의 앞에 빵을 준다. 잼도 없는, 찍어 먹을 아무런 소스도 없는 그냥 빵. 자신을 무시하냐며 엠마 하트에게 큰 소리를 치던 길버트에게 엠마는 자신을 하트라고 부르지 마라며, 자신은 포커판의 카드가 아니라고 한다.
에이스 로딘, 엠마 하트. 아명. 즉, 아이 때의 이름이었다.
딸과 아들의 나이도 모르는 아버지 길버트, 도망간 아내를 찾아 5년 혹은 6년 전국을 뒤졌지만 찾아낸 거라고는 국외로 도주했다는 것 정도. 집으로 돌아오니 작위도, 세간도 도박 빚에 죄다 빼앗기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며, 두 자식은 성 밖 판자촌에 겨우 집 한 칸 마련해 살고 있었다. 이게 고작 작년의 이야기.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화라고는, 욕설과 짧은 문답이 전부. 아이들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로딘의 나이는 16세, 엠마는 로딘보다 2살이 많은 18세였다.
작년 여름 큰 방에서 3 골드를 가져간 길버트. 그 돈은 로딘의 2학년 2학기 등록금이었고, 등록금을 내지 못한 로딘은 퇴학을 당하게 된다. 이를 추궁하는 엠마는 로딘이 아버지에게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시하다고 설명한다. 차가운 분위기 속 길버트는 빵을 씹었다. 딱딱하다. 하지만 빵만 딱딱한 게 아닌 거 같다. 무언가... 가슴이 답답하다.
대충 식사를 마친 후 거실 한쪽에 있는 의자에 몸을 뉘었다. 방이 두 개가 있지만 작은 방은 딸, 큰 방은 아버지의 방이었다. 로딘은 길버트처럼 거실에서 거주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 방은 로딘의 방이 되었다.
잠을 청하려던 찰나, 현관문이 열리며 엠마가 들어왔다. 대나무로 짠 소쿠리 안 양모가 가득 담겨 있었고, 거실에 놓인 물레를 살피며 자신은 잠이 필요하다는 길버트. 그런 길버트에게 엠마는 자신의 방에서 잠을 청하라고 한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 문득 정신을 차린 길버트. 이미 시간은 저녁이 되어있었다. 잠자리가 좋지 않아 몸이 개운하지 않았고 그 원인을 찾아냈다. 침대. 눅눅하고 축축한. 이상한 냄새는 안 났지만, 침대 안에 까는 밀짚의 기한이 다 하였다. 반년, 어쩌면 일 년 이상 방치된 밀짚. 판자촌에선 쉽게 밀짚을 구할 수 없었다.
살 돈은 애초에 없고, 구하기도 마땅치 않아, 볕이 좋은 날 짚을 말리며 몇 년이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꽃 다운 18세에 자신을 가꾸지 못하고, 묵묵히 집안 살림을 도 맡아하는 엠마를 생각하며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단지 귀족이 되려던 것 때문에, 몇 대를 걸쳐 작위를 이어도 그저 준귀족에 불과한 것을 탈피하고 싶었을 뿐인데, 모든 게 다 무너졌다. 그리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아이들이 받고 있다.
길버트의 할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집을 나간 길버트의 자식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으니, 그리고 왕립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하였으니, 길버트 역시 왕립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하였다. 가장 찬란했고, 행복했던 시절, 또한 잘못된 선택의 순간.
아이들까지 고통을 받는 처지에 눈물이 흐르는 길버트. 닦아 보지만 쉽게 그치지 않았다.
집을 나갔던 로딘이 돌아오고, 물레질을 하던 엠마랑 빵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왕립 아카데미에서 퇴학을 당해 같은 공립인 국립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없는 로딘은 사립 아카데미에 전학을 하기로 했고, 10퍼센트에 한해 훈작을 주는 왕립과 국립 아카데미와 달리 3퍼센트만 훈작을 준다는 사립. 하지만 등록금이 한 학기에 10 골드였다.
엠마가 어떻게든 해본다고 하고 다니는 쪽으로 생각해보자고 한다. 이를 방 안에서 몰래 듣고 있던 길버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냥 울 뿐이다. 흐르는 대로 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닥에 떨어진 눈물 자국을 지우려 닦을 것을 찾는 길버트. 품 속에서 전해받은 종이가 만져졌다. 만 골드. 죽으면 돈을 준다던 새벽에 만났던 노신사. 모든 걸 다짐하고 종이를 찢었다. 눈부신 찬란한 빛 무리가 쏟아졌다. 세상이 바뀌었다.
숲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동굴로 순간 이동한 길버트. 안으로 들어와라는 노신사의 목소리와 함께 몸이 허공에 뜬 채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끌어당기는 힘이 없어지며 떨어지는 길버트는 낙법을 펼쳐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황금. 그리고 은과 번쩍이는 보석들까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엄청난 양이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저택 하나까지.
저택으로 들어간 길버트. 노신사에게 자신이 죽는 것을 결심했다며 계획을 이행하겠다 하였고, 그런 길버트에게 노신사는 10년 전 잃었던 포스의 힘과 죽음의 기한 5년을 주었다.
노신사의 정체는 블랙 드래곤의 수장 인서 랜드였고, 계약의 조건은 단지 길버트의 죽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죽음이었다.
죽음으로써 받는 돈의 수익자를 자식들로 정한 길버트는 집으로 돌아가, 죽을 자리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감상평
소설 죽어야 번다는 안현일의 판타지 장편소설이다.
피폐했던 주인공의 심정과 바뀌어 가는 심정 표현을 굉장히 잘한 작품이다.
지옥 같던 인생에서 모든 걸 포기하여, 도박에 빠져 자식까지 방치하던 주인공이 유희중이던 드래곤을 만나 바뀌어가는 스토리.
주인공은 기사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똑똑했으며, 전술과 전략에 무엇보다 월등했다. 그로 인해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되려던 주인공은 행정 쪽으로 빠지게 되었고, 남들에게 뒤처지게 되었다.
죽기 위해 여행하는 주인공이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친구와 동료, 그리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짠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기사들이 싸우는 소설이 아닌, 전략과 전술을 이용하여 전쟁을 하는 소설이다.
단순한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 아닌, 진짜 판타지 소설이다. 전쟁 소설, 그 안에서 바뀌어가는 주인공을 보고 싶다면 꼭 읽을만한 소설이다.
이건 누군가에게 추천해도 욕먹을 만한 소설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다.
길버트. 길벗, 길을 벗하여 사람의 업보를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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